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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박수와 침묵

편집부

기사입력 2021-06-11 06:28     최종수정 2021-06-11 17:3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 갖고 계신 휴대 전화기의 전원을 꺼주시고, 악장 사이의 박수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 

공연장에 가면 음악가들이 무대로 입장하기 전에 흔히 들을 수 있는 안내 멘트입니다. 휴대 전화기에 대한 언급은 30년 전만 해도 들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안내가 되었습니다. 공연 도중 누군가의 휴대 전화기가 울리는 바람에, 공연의 분위기를 순간 망쳐놓았던 사례들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요. 이러한 안내 멘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만약, 위의 안내 멘트를 18세기 후반에 살았던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가 들었더라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모차르트 살았던 시기는 휴대 전화기는 고사하고 전화기도 없었던 때였으니 휴대 전화기에 대한 안내에 대해서 모차르트는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며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안내 멘트인 ‘악장 사이의 박수 금지’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모차르트는 분명 이런 반응을 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거지?’ 

모차르트 당대에는 악장 사이에 청중의 박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한 악장의 연주 도중에 박수가 나와도 놀랄 일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1778년 7월, 파리에 연주여행 차 머무르던 모차르트가 그의 아버지에게 썼던 편지 중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 교향곡이 시작되었습니다. … 최초의 알레그로 한 가운데에,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생각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과연 모든 청중은 일제히 열광하였습니다. 그리고 큰 박수가 쏟아졌지요. 저는 이 곡을 쓸 때 이것이 어떤 효과를 낼 지 알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마지막으로 다시 되풀이 되도록 해 놓았습니다. …”

편지에서 모차르트가 연주 도중에 나온 청중의 열광적인 박수 갈채에 흡족해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심지어, 청중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며 곡을 설계했다고도 밝혔지요. 이 편지 전체를 보면 모차르트는 파리 청중의 이러한 즉각적인 반응이 다른 도시들의 청중과 비교해서 특별히 더 열광적이라든가, 독특하다는 식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곧 청중이 곡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대에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1824년,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9번이 빈에서 초연되었을 때에도 청중이 2악장이 끝나자 열광적인 박수 갈채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66년, 옛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렸던 고별 갈라 공연에 자리한 청중들
                                                      (사진: Don Hogan Charles/The New York Times)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이러한 기록들은 오페라 공연에서 보여지는 청중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오페라 공연이야말로 청중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지요. 가수의 아리아가 끝나면 극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가 나오기도 하고 야유가 나오기도 하니까요. 환호가 넘칠 때에는 가수가 방금 불렀던 아리아를 다시 한 번 부르는 일도 드물지만 발생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도의 차이야 물론 존재하겠지만, 오페라 공연에서는 청중의 즉각적인 반응이 오늘날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데에 반해 다른 장르의 공연에서는 청중이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의례껏 그들의 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변한 것은 흥미롭습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는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낸 음악가들을 향해 보내는 찬사로서 늘 인식됩니다. 때로는 마지막 음이 아직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청중이 박수를 보내는 경우도 있지요. 열광적인 박수와 더불어 음악가들을 향한 또 하나의 찬사가 있습니다. 바로 침묵이죠. 보통 침묵은 조용히 끝나는 작품에서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음이 말 그대로 사라져가며 끝나는 말러(G.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9번 연주가 끝난 직후 숨 죽이며 얼마간 그 순간을 조용히 지켜주는 청중이 있다면 음악가들을 포함하여 그곳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이 받는 감동은 더욱 더 클 것입니다. 침묵이 꼭 조용히 끝나는 곡에서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전, 루체른에서 하이팅크(B. Haitink, 1929- )가 지휘하는 브루크너(A. Bruckner, 1824-1896)의 교향곡 8번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었습니다. 1시간이 훌쩍 넘게 진행되는 이 장대한 작품은 힘차고도 장엄하게 끝을 맺는데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청중이 박수를 치자, 하이팅크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 음의 울림이 박수소리에 묻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죠. 이런 경우, 그 울림이 4~5초 정도만 홀에 온전히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청중은 꼭 공연장에 자리한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온라인을 통해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도 청중이지요. 이 역시 3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온라인의 청중들은 박수와 침묵 대신 이모티콘이나 댓글 등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와 공연에 대한 만족도를 나타내지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청중 문화의 변화는 흥미롭습니다. 100년, 20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의 청중이 자리할까요? 그 때에도 박수와 침묵은 여전히 음악가들을 향한 찬사의 대표적인 표현 수단일까요? 어떠한 방식으로든 음악가에게 소중한 청중의 존재가 공연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추천영상: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2012년 루체른 실황이고요. (영상의 설명에는 1999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2012년이 맞습니다.) 마지막 음이 끝나고 상당히 긴 침묵이 이어진 후에야 박수가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침묵도 감동적인 음악적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WLP6kqcmPRI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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